2023. 6. 18. 15:40ㆍToday?
어느 날부터 꾸준히 성장한 운명에 대한 신념이 굳건해졌다.
그리고 운명은 사고와 사건에 주로 등장하며 그때마다 고뇌하게 되고 어느 날은 낙심하거나 어느 날은 운명 때문에 긍정적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대게는 보통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운명을 탓하고는 하는데 내가 솔직하지 못하는 것도 어떠한 운명을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어떠한 행동과 말을 조심하지 않고 함으로써 얻는 불행을 넘어가고자 하는 소원이다.
결국에는 내가 잘되고 싶고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순간 운명을 묵상한다.
생각에 빠져 있다 보면 이것이 잘 됐다고 할 수도 없고, 또 안 좋은 일처럼 보여도 이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는 경우도 있어서 안 좋다고 단정을 지을 수도 없다. 운명을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것도 운명이라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때도 운명이라 할 수 있고 하지 않았을 때도 운명이라고 말을 한다. 즉,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운명이고 운명이란 핑계를 빌릴 뿐이다. 사람은 자신은 약해서 남에게 어떠한 일을 납득시키고 증명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회피의 일종이다.
나는 나에게 어떠한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수긍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것이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을 뱉을 수 있는 것이 운명이라는 껍데기 안에 있는 자신의 의사표시이다.
오늘은 나를 볼 수 있다면 내가 앞에서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운명이란 핑계를 얼마든지 사용해도 괜찮다.